2021-07-30
문제 1 : 아래의 <제시문 1>에서 <제시문 4>를 하나의 주제에 관한 상반된 두 입장으로 분류하고, 각 입장을 요약하시오. [40점, 400자~500자]
<제시문 1>
수천 명의 희생자를 낸 불시의 폭력은 부조리 이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폭력은 할 말을 잃게 한다. 현대 사회의
폭력은 일상생활의 편의시설을 이용한 무차별적인 살육이다. 미국과 미국을 공격한 테러리스트 사이에는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생쥐가 코끼리를 쓰러뜨린 순간, 펜타곤은 혼란에 빠졌고 월가는 활동을 멈췄다. 중동지역에
미국이 개입해 온 역사는 테러의 역사와 겹친다. 불행하게도 전쟁터에서나 일어나던 파괴와 학살이 거대도시를 무대로
충격적인 규모로 재현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테러의 책임이 있다는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이것은 전쟁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악’에는 반드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진국들도 이에 협력
을 약속했다. 미국에서는 자국의 안전보장을 지키는 수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국민을 지켜야 한다는
‘자위전쟁’의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결국 테러를 억제하기 위한 방법은 강대국의 군사력에 의한 제재밖에 없는 것인가?
폭력은 정의라는 명분으로 이용되어 왔으나,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정치가 지나치게 폭력에 의존하
면 그 유효성은 감소하고 파괴성이 증대한다. 폭력이 한번 사용되면 증오심을 매개로 다른 폭력을 불러올 수 있다. 세계를
동시에 연결하는 미디어가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9․11 테러 이후에 이슬람 과격파가 환호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러자 인도에서는 힌두교 우익단체가 이슬람을 공격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인도와 대립관계에 있는 파키스탄이 탈레반
세력을 후원하고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족과 종교라는 ‘정의’의 색안경을 벗어 버리고 나면 초강대국이나
분쟁지역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소수의 권력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폭력을 신앙처럼 여겨 온 그들의 욕심이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아 온 것이다.
<제시문 2>
우리 자신과 가정을 방어하고 우리의 이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무력을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목적은
무력의 다른 모든 측면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것이다. 이는 전시와 마찬가지로 평시에도, 비록 그것이 비용이 든다손 치더라
도 무력 보유를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방어와 안전의 추구는 분명한 잠재적 대립에서 비롯된다.
어느 사회나 이해와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들 간의 대립으로 만연해 있다. 이른바 국가라는 사회들이 어떤 문제를 두고
상호 대립할 경우, 양측 모두 이를 만족스럽게 해결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무력에 호소한다. 처음
에 지적한 대로 적당한 표현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것을 마찰 전쟁이라고 부른다. 양측의 목적은 모두 각자 나름대로의
평화를 수립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자기 방어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군사력 사용이란 문제 해결을 위한 모든 시도
를 다 해본 연후에 취하게 되는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되었다. 국가들은 지난 수세기에 걸쳐 이러한 분쟁 문제를 다루기
위한 군사 및 정부 기관과 그것을 처리하기 위한 법률 및 의정서―일반적으로 제네바 협정으로 알려진―를 개발해 왔다.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교전국들 모두 협정 준수의 요구를 받기는 하지만 동일한 규정으로 전쟁을 할 리가 없다. 실제로
통솔력의 상당 부분을 나름대로의 관점과 나름대로의 방식, 그리고 자기편에는 유리하고 상대편에게는 불리한 규정에 따라
전쟁을 준비하는데 할애한다. 더욱이 일부 스포츠를 제외한 사회적으로 용인된 기타 행위들과 달리 전쟁과 전투는 시합이
아니다. 2등이 되는 것은 지는 것이다.
<제시문 3>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악에 대한 무저항을 제안한다. 악에 대한 무저항은 사람들의
공동생활의 기초가 되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악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한다. 우리의 전체 삶을 폭력에 근거하고, 모든
즐거움을 폭력을 통해서 얻거나 보호받는 대신에,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어린 시절부터 노인이 될 때까지 폭력을 당하거나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보는 대신에 우리의 말과 행동에서 다음과 같은 생각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보았다. 즉 사람들이
복수라는 것은 매우 저등한 동물의 감정이며, 폭력이라는 것은 수치스러운 행동일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앗아가는 것이라고 마음 속 깊이 느끼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또한 애국심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저
국민적 증오심 대신에, 그리고 전쟁이라고 불리는 저 살해에 대한 미화 대신에 … 그래서 어떤 특정한 나라, 특별한 법,
특정한 경계선, 특정한 땅만을 인정하는 것은 커다란 무지를 보여줄 뿐이라는 사실에 우리 모두 통감하는 것을 떠올려
본다. 그리하여 개개인의 삶이 모든 인간이 진심으로 추구하고 바라는 것이 되고, 모든 사람들은 형제자매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세상이 주는 모든 혜택을 즐기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제시문 4>
독재 정부가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일부의 자국민에게 조직적으로 테러를 가하는 것을 ‘국가 테러리즘’이라고 부른다.
이웃 나라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좋기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를 기다리다가 돌이킬 수 없는 희생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때의 방관이 도덕적으
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긴급한 상황이 바로 인도적 군사 개입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언제든지 신고가 들어오
면 출동할 수 있는 경찰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한 국제경찰이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출동하는 데에 시간
이 오래 걸린다면, 그래서 무턱대고 기다렸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면, 이웃한 국가가 군사적으
로 개입하는 것이 설령 그것이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더라도 정당할 수 있다.
부당한 폭력에 의해 탄압받는 시민들에게 군사 개입 같은 외부의 도입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
권리는 무엇에서 비롯할까? 우리에게는 위험에 처한 이웃을 도울 권리는 물론, 의무도 있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 도움을
받을 권리와 도움을 줄 의무가 이러저러한 법률적 주장에 의해 정당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권리와
의무는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에 우리가 느끼게 될 부끄러움에서 비롯한다. 그 부끄러움에서 우리의 의무가 생겨
나고, 우리의 의무에서 그들의 권리가 생겨난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위급한 상황에 처한 이웃이 구조되지
않았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그들과 우리 간의 정서적 연관성일 것이다. 지구적으로 증가하는 상호
연관성이 오늘날 집단 학살 같은 일이 일어난 이웃 나라에 우리가 개입하는 것을 의무로 만든다. 그들이 제때에 구조 받지
못했을 때에 느끼게 될 부끄러움이 우리로 하여금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문제 2 : [문제 1]의 한 입장에 근거하여, <보기 1>의 무력개입의 정당성을 평가하시오. [60점, 400자~500자]
<보기 1>
2011년 1월 13일 벵가지에서 시작된 카다피 리비아 국가수반 겸 국가평의회 의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이 시위는 재스민 혁명과 이집트 혁명의 영향을 받아 그 규모가 확대 되었다. 맨 처음에 정부는 벵가지에
군을 보내기 시작했다. 리비아 정부의 무차별 진압 작전으로 2월 20일 현재 사망자가 1,200명 발생하였으나 정부군은 이에
개의치 않고 전투기와 용병으로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리비아에서 일어난 시위는 처음엔 카다피의 장기집권과 독재에
반대하고 카다피 구속과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는 민주화 시위였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내전의 형태로 진행되었다. 리비
아 정부군이 무력을 사용하여 반군세력을 점차 약화시키자 서방세계는 이 사태를 심각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리비
아 정부군이 반군을 제압한 뒤 피의 숙청에 나설 경우 대규모 민간인 희생까지 발생할 것이 우려되었다. 이에 미국을 포함
한 국제사회는 자국 이기주의에 빠져 민간인 학살을 수수방관하고 중동지역 내 민주화 운동의 동력마저 잃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무력 개입을 신속히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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